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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유래

화본마을 유래

산성면은 79번 지방도와 10번 군도로 중앙선 철도 등이 면내를 지나고 있습니다. 팔공산이 남쪽에 가로놓여 있고, 조림산이 동쪽에 높이 솟아 있어 전반적으로 교통이 매우 불편하여 접근이 쉽지 않습니다. 산성면의 동쪽에 높이 솟아있어 전반적으로 교통이 매우 불편하여 접근이 쉽지 않습니다. 산성면의 동쪽은 고로면과 영천시 신녕면, 남쪽은 부계면과 영천시 신년면, 서쪽은 부계면과 우보면, 북쪽은 의흥면과 접하고 있습니다.

산성면은 부계현의 동쪽 지역으로 고종 32년(1895년) 군위현과 함께 의흥현이 군으로 승격될 때 의흥군 부동면, 신남면 지역이었고, 고종 33년(1896년) 8월 4일 훈령 제35호로 13제도가 실시됨에 따라 경상북도 의흥군으로 되어 여좌, 아치, 신령, 범중, 범하, 답동, 전귀, 소상, 소하, 범박, 반내의 11개 동리를 관할하였습니다.

1914년 3월 1일 부령 제111호로 부, 군, 면의 통폐합에 따라 의흥군을 군위군에 편입시킬 때 신남면지역의 직전, 상본, 하본, 신기, 산고, 산성, 원당, 상검, 하검, 하양의 10개 동리와 중리면 교전동 일부와 소수면 하전동 일부를 병합하여 팔공산성의 이름을 따서 산성면이라 하고, 군위군에 편입되어 무암, 운산, 삼산, 백학, 화전, 화본, 원산, 금양의 9개 동을 개편 관할하게 되었습니다.

1983년 12월 15일 행정구역 조정 개편으로 원산동과 금양동이 의흥면으로 개편 분리되었으며, 1988년 1월 1일 행정구역 조정에 따라 화전동이 화전 1,2동으로 분동되었습니다.

현재는 백학, 삼산, 봉림, 무암, 운산, 화본, 화전 등의 7개 법정리와 14개 행정리에 속한 28개 자연마을을 관할하고 있으며, 747세대 1,618명(남:777명, 여:841명)의 주민이 있습니다.


 

 

화본리의 역사와 유래

 

고종 32년(1895년)군위현과 함께 의흥현이 군으로 승격될 때 의흥군 신남면 지역이었고, 고종 33년(1896년) 8월 4일 훈령 제 35호로 13제도가 실시됨에 따라 경상북도 의흥군 신남면 지역으로 되었습니다. 1914년 3월 1일 부령 제111호로 부.군.면의 통폐합에 따라 의흥군을 군위군에 편입시켜 의흥면으로 개편할 때 화본동에 속하게 하고, 군위군 산성면에 편입하였습니다.

1988년 5월 1일동을 리로 바꿈에 따라 화본 1,2,3리로 개칭하였습니다.

화본1리에는 화본(신내미, 하동, 본동, 신남면)마을이 속해 있는데 아치동에 있던 면사무소가 1961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여 면소재지가 되는 마을입니다. 조림산의 형상이 산여화근고화본(山如花根故花本)이어서 화본(花本)이라고 이름했습니다.

1914년 원산, 금양, 화전, 화본을 신남면에 속하게 할 때 신내미라 하였으며, 이 마을에서는 하동이라 하였습니다.

 

화본2리는 중동에 속해 있습니다.

이 마을은 상동과 하동의 중간에 위치한 마을로 1479년경 엄광순이 이 마을을 개척하여 지은 이름입니다. 엄광순은 부친인 영월호장 엄홍도가 단종을 매장하고 세조의 명령을 어긴죄로 강원도 영월에서 정처없이 망명하여 아버지는 청주에서 사망하고 춘못(최문대)에 정착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화본3리에는 상동마을에 속해 있는데 산간 오지의 조그마한 마을로 중동 윗쪽에 있습니다.

400여년전 최민이 개척하여 상동(춘못)이라고 하였습니다.